비교의 기준, 올바른 기준
그럼 이번에는 이 차이를 결정짓는 ‘기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올바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기준이란 똑같이 잴 수 있는 그래서 공정한 일종의 잣대를 의미합니다.
씨름대회를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씨름은 누가 더 힘이 센가를 겨루는 것입니다.
그럼 경기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여자와 남자, 노인과 어린이, 1학년과 5학년, 몸무게 40Kg나가는 사람과 100Kg나가는 사람이 전부 한꺼번에 엉켜서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세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는 여자끼리, 또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많이 나가는 사람끼리, 적게 나가는 사람은 적게 나가는 사람끼리, 어린이는 어린이끼리 모여 어린이씨름대회에서, 또 대학생은 대학생끼리 나누어져 그렇게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집에서 콩나물을 키우면서 그것이 얼마나 쑥쑥 잘자라고 있는지를 그래프를 통해 나타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시다.
어떤 관찰결과를 그래프로 그린다고 하였을 때, 미리 어떠한 약속을 정해 놓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1시간마다 그린다든가, 3시간마다 그린다든가, 아니면 하루마다 그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1시간마다 그렸다가 3시간마다 그렸다가 또 하루 빼먹고 다음날 한꺼번에 그렸다가 한다면 그 그래프의 결과를 어떻게 올바로 신뢰할 수가 있겠습니까?
과학은 나 혼자, 내 방식에 의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은 모든 사람들 누구나가 다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내가 알리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정확하게만 느껴지는 과학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그 차이를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그런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크기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느끼기에는 이 우주의 모든 것이 항상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동일하게 100배쯤 커진다면 아니면 반대로 100배쯤 작아진다면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공부하던 책상 그리고 공책, 연필, 옷, 신발, 우리가 사는 이 집, 이 도시...이처럼 모든 것이 똑같은 크기로 작아졌는데 내 몸 하나만 이전과 똑같은 그대로의 크기라면 단번에 아! 세상이 작아졌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이 작아진 만큼 나의 몸 또한 그것에 비례하여 작아졌다면 나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것이 작아진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무도 그 사실에 대해 전혀 의심조차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임의의 약속에 의해 만들어졌던 ‘시간’이라는 개념’,
또 ’공간‘이라는 개념’ 그리고 ‘물질’ 이라는 개념....
이와 같은 개념들은 항상 절대적인 차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무엇무엇에 대한 그것의 비교로 만들어진 상대적인 개념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강조할 때 혹은 그것이 정말 진리인 것처럼 확신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항상 ‘절대적’이라는 말을 붙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바로 ‘절대’라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스갯소리를 넘어서 과학에서는 정말 진리처럼 여겨지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느끼고 감지하고 이룩해 온 모든 것은 바로 무엇무엇에 대한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