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식의 출발 : 어떻게 주장할까?
주장하는 글이란
무엇을 : 어떤 사실에 관하여 옳다고 믿는 것을
또는 옳지 않다고 믿는 것을
어떤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또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어떻게 : 이치에 맞게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논조로 써나가는 글이다
‘주장’...
그것은 어떤 일이나 문제점에 대하여 자기의 뜻을 세우고 그것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그 생각을 밀고 나가는 일종의 신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그 신념이라는 것이 반드시 진리이어야 하고 진실이어야 하고 또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주장이 옳든 옳지 않든 또 자기의 주장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주장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자기의 주장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건 내거야, 누구도 손대지 마!
그건 내건데!
그래서 '주장'하면 신념, 강함, 소신, 의지, 논리, 줏대 같은 긍정적인 것에서부터 고집, 아집, 억지 같은 부정적인 것이 머리 속에 함께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늘상 하고 사는 이러한 주장과 ‘주장하는 글쓰기’에서 다루어지는 ‘주장’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어떻게 다를까?
먼저 ‘글쓰기에서의 주장’은 남도 나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주장 즉 ‘말이 되는 주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이 아닌 거짓 주장,
터무니 없는 억지 주장,
떼를 쓰는 고집 따위를 주장이라고 우겨서는 안되고 또 줏대 없이 남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가는 그런 주장도 참 주장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국 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여 남도 나의 생각에 설득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맞아! 그래! 옳아!
이러한 ‘주장’과 관련된 몇가지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먼저 용감한 주장을 하였다가 해를 당할 뻔한 사람 이야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네모난 모양이며 우주는 이러한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던 시대가 있었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소년, 왕에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다들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지구는 평평한 네모’.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 이 말은 진실로 통했으며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정해놓은 진실을 벗어난다는 것은 커다란 죄악이었고 신에 대한 반역 왕에 대한 불순종이었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몇몇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아마도 지구가 네모가 아니며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해가 떠오르며 지는 모습을 관찰하고 또 밤하늘의 별들의 운행을 지켜보며 아마도 지구는 평평한 네모의 땅이 아니라 공처럼 둥근 타원형의 모습을 한 것이고 또 이 세상도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가 우주의 질서에 맞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구가 평평한 네모가 아니면 어떻게 될까?
그러므로 집 밖으로 계속 걸어 나가 지구 끝에 도달했을 때 땅이 끝나고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수의 권력 앞에 이러한 소수 사람들의 주장은 묵살되었고 심지어 이러한 주장이 죄가 되어 재판을 받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것은 갈릴레이가 남겼다는 아주 유명한 말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주장하여 신에 대한 모독죄로 법정에 섰던 갈릴레이가 목숨을 잃을 처지가 되자 결국 권력의 강압에 못이기며 자기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며 재판장 밖을 걸어나오면서 독백처럼 중얼거렸다는 말이다.
갈릴레이의 주장을 강조하여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사실 신뢰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을 강조한 말이니 기억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우주선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현대와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던 시대에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를 입증하는 것은 오로지 당시에 통용되던 관념이었고 권력이었는데 이 절대 권력 앞에 새로운 진실을 주장했던 과학자의 신념은 무참히 짓밟혀야 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라면 어떨까? 오히려 지구가 네모나다, 평평하다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재판까지 받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정신상태는 한번쯤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지구가 네모나다, 평평하다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거짓이라는 것이 이미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이의 주장은 참이었다. 그리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나 객관성에 있어서 전혀 잘못된 것이 없었지만 그러나 그러한 진실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 속에서 참된 주장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매도당하고 파묻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진 한 장쯤 재판정에서 증거물로 제시할 수 있었다면 사정은 좀 나아졌을까? 어땠을까? 그 결과는 우리의 상상의 몫으로 남겨두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1564-1642) :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로서 근대 자연과학의 아버지‘... 1632년 천문대화라는 책을 써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과학적으로 옳음을 제창하였다가 법정에 서기도 했다
옛날 힘이 무척 센 장수가 있었다. 이 장수가 쉬는 짬에 이를 잡아죽이려고 큰 바위에 이를 얹어놓고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런데 바위만 깨지고 이는 죽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있던 부하가 이를 손톱으로 눌러 주였다. 장수는 놀라서 “야, 내가 주먹으로도 못 죽이는 이를 손톱으로 죽이는 너는 여간 힘이 센 게 아니구나!‘ 하더란다. 그 부하는 장수보다 정말 힘이 센 사람이었일까? 물론 아니다. 부하는 장수보다 힘이 센 것이 아니라 머리 즉 사고하는 능력이 더 좋았던 것이다.
머리를 써, 머리를!
손톱으로 눌러죽일 수 있는 간단한 일을 가지고 주먹으로 내리쳐서 엉뚱한 바위만 부숴버린 장수는 생각하는 인간이라고 하기보다는 힘만 믿고 행동하는 동물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사람이 아기의 모습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그 신체 뿐 아니라 같이 자라나는 것이 바로 정신 즉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 중에서도 무엇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주장하는 사고의 힘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많은 능력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정치와 법, 사회와 문화, 경제와 무역 등의 크고 중요한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을 먹을까, 어떤 것을 입을까 하는 아주 간단한 일에서조차 사람의 선택과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의 주장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이건 이러면 안 되는데’
‘저건 저러면 어떨까?’
‘이건 이런 이유로 이렇게 합시다’
‘저건 저런 까닭이 있으니 저렇게 하지 합시다’
이와 같이 어떤 일에 대해 문제점을 느껴 그것을 해결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고 그 바람이 실천되어졌으면 하는 목적으로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글로 펼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문제의식이라고 부르는데 논설문의 시작, 주장하는 글쓰기의 시작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의 출발에서부터이다. 문제의식을 풀어간 글 그것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글이 바로 주장하는 글쓰기다.
이러한 글은 보통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쓰여져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래서 이러한 글들을 통틀어 논설문, 주장하는 글, 설득하는 글 등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생각 끝에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즉흥적인 느낌이나 직관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문제의식 :
어떻게 변할까?
무엇이 될까?
어디서 발견되는가?
이것과 저것의 관계는 무엇일까?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어떠한 짝을 지을 수 있을까?
어떠한 조합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의 결과는 무엇일까?
이것의 보기로 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을까?
<문제의 발견>
‘꼭 이렇게 했으면’ 하고 생각한 일은?
‘이렇게 합시다’하고 외치고 싶은 것은?
생활하면서 불만스럽거나 불편한 일은?
이렇게 고쳤으면 하는 바람이나 의견은?
⇒ 요즘 내가 가장 절실하게 나타내고 싶은 의견이 있다면 그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고 그 근거들은 논리적으로 나열하며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이다.
문제의식 → 주장
문제의식> 학교 앞 신호등이 고장 난지
몇 주가 지나도록 방치되어 있다.
그동안 몇 번씩 사고가
날 뻔하여 위험한 적이 많았다
주장) 빨리 고쳤으면 좋겠다
문제의식> 화장실에 가보면 손을 씻고 나서
수도꼭지를 꼭 잠그지 않아서 언제나
물이 새는 것을 많이 보았다.
주장) 다같이 조심하고 주의한다면
많은 물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식> 길거리에 함부로 뱉은 껌이 신발에 달라붙어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주장) 귀찮더라도 꼭 휴지에 싸서 버리도록 하자.
그러면 신발을 버릴 염려도 없고
또 거리도 한결 깨끗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또한 보도를 다시 만드는데 드는 비용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글은 아무리 읽어도 글쓴이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또는 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그건 왜 그럴까?
나의 주장이 남에게 이해가 되려면 그 주장이 합리적이어야 하며 누구나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 하는 근거가 필요한데 읽는 이로 하여금 ‘맞아, 그렇게 해야지’, ‘참 그렇구나’하는 생각을 주지 못한다면 글에서 글쓴이의 주장은 나타나 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까닭이 분명하지 않은 글이기 때문인 것이다.
주장하는 글은 단순히 나의 생각, 나의 바람을 나타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도 나의 의견에 동의해주길 바라고 함께 행동할 수 있기를 바라고 권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알맞은 까닭, 정당한 사유가 글 안에 또렷하게 드러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글을 읽는 사람이 ‘그렇구나’, ‘정말 맞는 말이야’ ‘나도 고치도록 해야지’ ‘왜 그런 생각을 진작 하지 못했을까’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자
찬성 :
반대 :
주장)
근거)
결론)
주장) 부모님께 효도하자
근거) 부모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다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 주신다.
부모는 나에게 생명을 주셨다.
부모는 사랑과 인내로 나를 보살펴주신다
효는 인간의 근본도리이다
결론) 그러므로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잘해드려야 한다.
평상시에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할 때는 잘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지만 갑자기 몸의 한 군데가 아프다고 가정해보자.
다리를 다쳤다면 지하철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곧바로 느낄 것이다. 손을 다쳤다면 열 손가락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눈을 다쳤다면 모든 것을 볼 수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입이 다쳤다면 먹는 행동을 잘 할 수가 없어 배가 고플 것이다.
주장의 처음 시작은 이렇게 살면서 부딪히는 체험으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잠시 잠깐 다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평생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잠시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생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살아가는 힘든 여건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생각은 불편함이나 동정을 넘어서 아마도 장애인 시설에 대한 불편함이나 개선점 같은 것에 새로운 시각을 갖고 주장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주장 :
장애인을 도와줍시다.
신호등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줍시다.
옆에서 손가락질하거나 수군거리지 않는다
보통 주장은 개인적인 생활 속에서 아주 작은 것들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범위를 넓혀 가면 가족, 친구, 학교, 동네, 사회, 나라, 세계 등등 여러 곳에서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주장할거리’는 생활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절실한 문제가 아니라면 감상문의 형식을 빌어쓰는 평범한 글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장을 펼치는 글, 설득을 하는 글 그런 글들을 주변에서 찾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보기 1>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자
어린이를 보호하자
과소비를 추방하자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
외화낭비를 하지 말자
검소한 생활을 하자
실업률을 낮추자
수재민을 돕자
산에 나무를 심자
수돗물을 낭비하지 말자
불조심을 하자
나무를 심자
이러한 것을 사설이라고 부른다.
신문이나 잡지 같은 정기 간행물에서 어떻게 하여야겠다라든가 앞으로 이렇게 하자, 이러한 것을 하지 말자는 내용으로 독자를 향해 쓴 글이 바로 사설이다. 대부분 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이나 주장을 담고 있다.
<보기 2>
하루살이의 일생
남과 북의 민요비교
개구리 알의 부화과정
제주도의 사투리 연구
조선시대 궁중 음식 연구
로마 시대의 시민에 관한 연구
한강의 생태 조사
아리랑과 한민족의 정서
낙동강 생태보고
이러한 글을 논문이라고 부른다.
논문은 학교 공부나 가정 학습으로 무엇을 연구, 조사하여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글이다.
보통 논문은 학습에 대한 연구의 결과를 쓴 글을 통틀어 말한다.
<보기 3>
음식물을 재활용합시다
자나깨나 불조심
서로 믿는 사회를 만듭시다
신토불이 : 땅을 보호합시다
다시 한 번 한강의 기적을
밤새도록 불이 켜진 도서관이 보고 싶다
책을 읽는 어린이가 됩시다
이웃을 사랑합시다
이런 글들을 연설문이라고 한다.
연설문은 말 그대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려고 쓴 원고를 말한다. 보통 웅변대회, 선거 같은 데 나가기 위해 쓰는 글로서 듣는 사람을 의식해서 쓰는 글이 연설문이다.
<보기 4>
판소리의 이해
한국의 전래 동화의 특징
영화 속에 나타나는 여성의 역할
방정환 선생과 어린이
윤극영의 노랫말 연구
어린 왕자의 순수성
미술 작품의 재료의 다양성
미국의 동요와 한국의 동요 비교
이러한 글을 평론이라고 한다.
평론은 문학, 음악, 그림, 연극, 영화 등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것에 대한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쓴 글을 말한다. 비평이라고도 부른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같은 논설문이라고 하여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 또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문장의 구성을 어떻게 하는 지에 따라 논설문도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달리 나타나는 것이다.
▶▶다음페이지에서 글은 계속 이어집니다. 다음페이지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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